서른이 되던 해, 퇴사하고 유럽여행을 떠났습니다. 유럽도 처음, 혼자 하는 여행도 처음이었습니다. 한 달이라는 긴 기간 동안 여행하는 것도 처음이었죠. 비행기 안에서 체코어로 안녕하세요 도브리 덴 , 감사합니다 뎨꾸이 를 열심히 연습했던 기억이 납니다.
하지만 체코의 수도인 프라하 바츨라프 공항에 도착했을 때, 도브리 덴이나 뎨꾸이는 생각나지도 않았습니다. 장대같이 키가 큰(제가 머리가 그의 허리쯤 있었습니다) 공항 직원의 무뚝뚝한 말투에 ‘예스’ 또는 ‘노’로 겨우 답하고는 얼음이 되어 입국 심사를 통과했어요. 공항 직원들이 제 캐리어를 유독 오래 살펴볼 땐 잘못한 것도 없는데 종종거렸고요.
혼자 떠난 첫 여행은 매사가 그랬습니다. 설레면서도 두려웠고, 아름다움에 황홀해하면서도 다름과 새로움이 벅차게 느껴지기도 했어요. 낯선 화폐 단위와 언어, 신기하고 예뻤던 트램, 아름다운 건축물들과 풍경, 미처 몰랐던 문화들이 순서 없이 제게 쏟아졌어요.
여행의 중반부터는 크로아티아 일주를 했습니다. 여행이 끝나가는 것이 아쉬우면서도, 혼자 하는 여행에 조금 지쳤었죠. 좋은 것을 봐도, 맛있는 것을 먹어도- 함께 환호할 사람이 없다는 건 외로운 일이구나, 생각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억울한 일을 겪고 일정도 꼬인 채 숙소에 들어가 엉엉 울었어요. 서울로 영상통화를 걸어 모국어로 신세 한탄을 한참 했습니다. 친구가 제 숙소를 보면서 “약간 감옥 재질인데?”라고 하길래 한참 웃다가 아쉽게 전화를 끊었어요. 그러고도 마음이 풀리지 않아 숙소 벽을 바라보며 멍하니 앉아 있었습니다. 그 와중에도 배는 고프더라고요.
하릴없이 스플리트(크로아티아의 도시)의 뒷골목을 걷다가 허름한 가게를 발견했습니다. 구글 평점을 확인해 보려고 가게 앞에 잠시 멈춰 섰는데, 주인아주머니가 들어오라는 손짓을 해 보였습니다. 혹시 이상한 가게일까 봐 쭈뼛쭈뼛 망설이고 섰는데 주인아주머니가 저를 보고 활짝 웃으시더라고요. 다음은 말씀 안 드려도 아시겠죠? 저도 모르게 식당에 들어가 앉았습니다.
아주머니는 영어에 서툴렀고 저는 크로아티아어를 전혀 몰랐습니다. 하지만 깔라마리 튀김과 토마토 리조또를 주문하는 일은 전혀 어렵지 않았어요. 튀김의 양은 많지 않게, 리조또는 덜 짜게 주문하는 것도요. 샐러드를 서비스로 조금 줘도 괜찮은지, 와인은 시음해 본 후 선택할 수 있게 해주겠다든지, 깔라마리 조림을 먹어봤는지 물으시는 아주머니의 말도 모두 이해할 수 있었어요. AI 번역기가 없는 시절이었는데도 말이에요.
주문하지 않은 음식들이 줄줄이 나오길래 ‘사실 내 말을 못 알아들으신 게 아닐까?’, ‘아니면 나 호구 잡힌 건가?’ 생각하며 식사를 했습니다. 그래도 괜찮다 싶을 정도로 맛있고 편한 분위기였어요. 처음으로 멀리 외국에 나와 있다는 사실을 잊은 채 먹고 마셨습니다.
한참 후 저는 배가 너무 불러 헉헉거리며 가게를 나왔습니다. 계산서는 단출했고, 주문하지 않은 메뉴가 찍혀있지도 않았습니다. 일어서며 테이블 위에 팁을 계산해 올려놓았는데 아주머니가 얼른 다시 제 손에 쥐여주셨어요. 그러곤 가겔 나서는 저를 꽤 오래 배웅해 주셨답니다. 저도 몇 번이나 돌아보며 손을 흔들었어요. 집을 떠나서 이곳에 왔는데 다시 집을 떠나는 느낌이 들었어요.
때로 그런 사람들을 만납니다. 배를 채워주고, 슬픔을 털어버리게 해 주고, 편히 쉬게 해 주고- 이제 다시 가 볼 용기를 내게 해 주는 사람. 오늘은 옛 사진을 뒤적이며 그들의 얼굴을 들여다봤습니다. 저도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 되어본 적이 있었나도 생각해 봤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없는 것 같아요. 그래서 앞으로 되어보고 싶어요.
너무 엉망일 때도 무람없이 마주할 수 있는 사람, 판단하지 않는 사람, 그냥 거기 있는 사람, 외롭고 지칠 때 집이 되어 주는 사람. 그런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