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얼굴의 이야기를 써보려고 합니다. 맨얼굴의 이야기를 써보려고 합니다. 모나고 못난 부분이 드러나겠지만 그게 진짜 저니까요. 집타령이라 할 수 있는 이야기기도 하고요.
지난 3월, 이사와 리모델링 일정으로 바빴습니다. 속으로 ‘환멸’이란 단어를 내내 읊조리며 지냈어요. 보통은 앞에 ‘인간’을 붙여 ‘인간 환멸’이라고들 하던데, 저는 ‘인생 환멸’을 느끼는 지경에 이르렀어요.
이번 길목집 리모델링도 반셀프, 직영공사로 진행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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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과정의 시공업체나 전문가를 직접 선정하는 방식이에요. 셀프로 작업하는 부분도 있고요.
인테리어 업체에 맡기는 것과 달리, 현장 감리가 없습니다. 발주자와 시공자의 중간자가 없다보니 협의된 대로 잘 시공이 되었는지, 혹 조치가 필요한 부분은 없는지 바로바로 확인해서 보완을 요청해야 합니다. 아니면 이어진 다른 작업의 일정이 꼬여 시간과 비용이 계속 늘어나는 사태가 벌어지니까요.
공사완 별개로 루틴한 업무들을 해내야 하고, 이미 네 곳의 숙소를 거치며 집 없는 생활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공사일정이 딜레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아파트다 보니, 이웃의 피해를 최소화하고 예산을 아끼기 위해 공정별 일정을 타이트하게 잡기도 했고요.
하지만 계획과 현실은 늘 너무 다르죠……
저희는 합의된 내용과 다르게 시공하고도 태연한 업체들을 마주해야 했어요. 뚫리지 말아야 할 자리가 휑하게 뚫려버렸고, 매끈해야 할 자리가 뜯어 먹은 솜사탕처럼 마감되어 있었습니다. 때론 마감이랄게 아예 없는 상황도 있었고, 아직 한 번도 사용도 하지 않은 도기와 인테리어 악세사리들이 티나게 망가지기도 했습니다. 이 부분들을 수습하는데 드는 시간과 비용이 계속 늘어나고 있었고요. 저는 평정심을 유지할 수 없었습니다.
그들의 실수를 미워하고, 수습할 의지가 없는 태도를 미워하고, 사과하지 않는 그 사람을 아주 미워했습니다. 미움으론 부족해서 결국 인생 환멸의 단계까지 가버린 것이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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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중에 A형 독감과 전정신경염이 순서대로 찾아왔습니다. 의사 선생님은 면역력과 체력 문제라며 주사와 약, 수액을 처방해 주셨는데요. 특별히 차도가 없더라고요. 틈이 나면 차나 숙소에 가서, 공사 현장 한 편에 자리 잡고 누워, 울었습니다… 이제 생각해 보니 마음에 탈이나 몸도 아팠던 것 같아요.
재공사 일정을 잡고, 업체에 보상을 요구하고, 자재를 다시 주문하면서는 더욱 조급하고 예민해졌습니다. 눈을 가느다랗게 뜨고 집 구석구석을 살피며 ‘음… 여긴 문제 없고, 여긴 조금 깨졌잖아!’라며 하자를 하나하나 잡아내기도 했어요.
그러다 고갤 들어 길목집을 둘러봤습니다. 소연 님과 저, 소망이가 살 집이 눈앞에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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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고른 바닥과 벽지, 주문 제작한 창과 샷시가 마음에 들었습니다. 친구가 정성스레 시공해 준 인테리어 필름은 처음부터 그 색이었던 듯 자연스럽게 어울렸고, 친구의 손길이라 생각하니 마음이 더 좋았어요. 좁아서 걱정했던 주방은, 인어피스의 협력업체이자 제가 좋아하는 어른인 건우디자인 사장님 손에서 간결하고 단정한 느낌으로 다시 태어나 있었고요. 문득 철거팀과 전기기사님의 깔끔하고 멋진 작업도 떠올랐습니다.
길목집은 상상했던 모습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때야 생각했어요. 먼 훗날 ‘아, 그때 그 하자 말끔하게 못 고쳐서 너무 아쉽다’라고 말하게 될까?’ 그렇진 않을 것 같았어요. 대신 집을 꾸릴 때 더 좋은 마음을 먹지 못한 것과 순간순간을 더 누리지 못한 것을 아쉬워할 거란 생각이 들었어요. 그때부턴 마음을 달리 먹었습니다.
중대한 하자들만 합리적으로 보수할 방법을 찾고, 재공사를 피할 다른 방법을 좀 더 너른 마음으로 찾아보기로 했습니다. 자잘한 부분들은 길목집을 만들어가는 과정의 에피소드로 남겨두기로 했어요. 같은 과정을 반복한다고 해서 완벽한 인테리어가 될지 알 수 없을뿐더러, 애초에 인테리어라는 영역에 ‘하자 없음’과 ‘완벽한 상호이해’란 불가능에 가깝겠다는 깨달음을 얻었거든요.
그때부터 할 수 있는 만큼하고 나머지는 흘러가는 대로 두었습니다. 대신 속으로 노래를 불렀지요. 심수봉의 ‘백만송이 장미’라는 노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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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워하는 미워하는 미워하는 마음 없이
아낌없이 아낌없이 사랑을 주기만 할 때
수백만송이 백만송이 백만송이 꽃은 피고
그립고 아름다운 내 별나라로 갈 수 있다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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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로 드라마 극본을 배우러 다닐 적, 작가 선생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넌 인간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구나. 근데 어쩌니? 드라마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으면 쓰기 어려운데…”
제가 뭐라고 답했는지는 기억나지 않습니다. 무척 당황했었던 것만 생각나요. 이제 와 생각해 봐도 선생님 말씀이 틀리진 않은 것 같아요. 저는 사람들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람을 사랑해야 좋은 글을 쓸 수 있다는, 좋은 사람이 좋은 글을 쓸 수 있다는 말 앞에서 여전히 주춤거려요. ‘이런 내가 글을 써도 되나?’ 하면서요.
그렇지만 이렇게는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저는 글을 쓰면서 미워하는 마음을 지워가고, 글을 쓸 때마다 쓰기 전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어가는 것 같아요. 한 송이, 두 송이 꽃을 피우듯 한 문장 한 문장을 쓰며 아름다운 별나라에 가까워지는 것 같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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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4월 하순을 향해 갑니다. 봄꽃이 잔뜩 피고 지더니, 길목집 베란다에도 작약이 몇 송이 피었어요. 저는 이제야 집에 돌아온 기분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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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4월 19일
미워하는 미워하는 미워하는 마음 없이 타령꾼 김미리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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