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해 보면 늘 집이 있었어요. 춘천에서 캐리어 하나 끌고 상경한 후로 쭉- 말이죠. 월세든 전세든 '이제 집에 가야지'하고 돌아갈 곳이, 늘 있었습니다. 이직할 때도 가끔은 공백이 생기고, 하물며 연애도 쉬어갈 때가 있는데- 집은 그런 적이 없었어요. 여태 집에서 집으로 잘 갈아타며 자리를 옮겨왔던 거죠.
그런데 이번엔 스무스한 환승에 실패하고 말았습니다.지금 사는 집과 새로 갈 집 사이에 한 달이 비어 버렸거든요. 지금 사는 집은 이달 말까지 비워줘야 하고, 새로 갈 집은 리모델링 문제로 3월 하순에나 들어갈 수 있어요. 별안간 집이 없는 상태로 한 달을 버텨야 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집이 아닌 곳에서는 등 붙이고 눕지 못하는 털가족 소망이도 있는데 말이죠......
처음엔 소망이를 친구네 장기 하숙생으로 보내고 저는 또 다른 친구의 군식구가 될 참이었어요. 그런데 분리불안 문제로(소망이가 아니라 제가 있어요...) 어렵게 됐어요. 다행인 점은 리모델링하는 집 가까운 곳에 한 달간 지낼 집을 얻었다는 것입니다. 처음엔 반려동물은 입실이 불가하다고 하셨지만 소망이의 귀여운 프로필로 단숨에 허락을 얻었습니다.
하지만 환승 아니고 하차, 하차이사는 말처럼 쉬운 게 아니더군요. 가구와 가전, 살아 있는 식물들, 각종 짐들에게도 집이 필요하니까요. 한 달 동안 지낼 집에 이 모든 것을 들고 갔다 또 들고 나갈 수도 없고요(게다가 소망이짐도 어마어마하더라고요. 고양이가구, 화장실, 모래, 사료, 장난감, 건강용품과 미용용품들).
물론 이런 이들이 저뿐인 것은 아니고, 이런 상황을 위해 짐보관 서비스라는 것이 있죠. 하지만 '짐 보관 서비스라는 것이 있다'는 것을 아는 것과 '짐 보관 서비스에 내 모든 짐을 보냈다가 한 달 뒤 돌려받자'고 결정하는 것에는 너무도 큰 차이가 있더라고요.
어떤 걸 한달집에 가져가고 어떤 걸 보관 짐에 부칠지, 이건 넣고 저건 뺄지, 얜 챙기고 쟨 버릴지 상상하는 것만으로 피곤해졌거든요(사실 가장 피곤한 것은 리모델링 준비지만요).
짐 싸려니 장롱 속으로 쏙 들어간 소망이
하지만 장점도 있습니다. 감상에 젖을 시간이 사라졌다는 점이죠.
봄, 여름, 가을, 겨울이 다섯 번 오고 가는 동안 소망이와 저를 품어준 집. 건물 탑층이라 꼭대기집이라 이름 붙였던 집. 처음으로 5년동안이나 산 집. 이직을 하고, 프리랜서로 전향하고, 새로운 브랜드를 시작했던 집. 날쌘 두 살 냥이던 소망이를 일곱 살의 느긋한 고양이로 키워준 집. 수백 권의 책을 읽게 하고 세 권의 책을 쓰게 해 준 집. 복잡한 하차이사가 아니었더라면 이 집과 이별하기가 너무 힘들었을 거예요.
오늘, 꼭대기집에서의 마지막 밤입니다. 저는 통창으로 보이는 어린이대공원 뷰를, 소망이는 신나게 흙놀이를 할 수 있던 테라스를 잃어서 무척이나 아쉬워요. 하지만 이 집에서 잘 이별하고 나면 또 다른 곳에서의 새로운 날들이 저흴 기다리고 있을 거예요. 그러니 용감히 한 시절의 집과 안녕하려고요.
기꺼이, 모험을 시작하려고요.
구독자님, 타령꾼 김나중 인사 올립니다. 결국 미리 써두지 못했군요.... 이렇게 제멋대로 보낼 거라면 <주간 집타령>이 아니라 <깜짝 집타령>이라고 불러야 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집에 있는 시간과 집을 그리워하는 시간으로 이루어진 하루를 산다. 좋아하는 것은 집밥, 잠옷, 눕기. 그리고 반려묘 소망이. 매일 아침 마당을 쓰는 노인처럼 사소한 꾸준함을 가진 사람이 되기를 희망한다. 『아무튼, 집』 『금요일엔 시골집으로 퇴근합니다』 『우리는 나란히 계절을 쓰고』 를 썼다. 가구브랜드 인어피스에서 콘텐츠기획자로 일한다.
함께 읽고 싶은 사람이 떠오르신다면, 아래 공유하기 링크를 공유해주세요.
저작권은 김미리에게 있으며, 출처 표기 후 공유할 수 있습니다. (인스타그램 @merrymiry)